Waterloo Region Museum 관람3철물점 대장간을 겸하고 있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보았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들어서니 멋지게 생긴 이 청년, 철물에 구멍을 내는 시범을 보여 주겠다고 자청을 하고 나선다.
먼저 풀무질로 쇠를 달구어 놓고......
저 망치로 여러번 내리쳤는데 어디 뜻대로 되는가?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 자꾸 하려는 것을 다칠까 봐 내가 말렸다. 짧은 영어로...... That's OK. That's OK......
여러 규격의 말굽이 준비되어 있다. 당시 농사일과 교통수단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컸음이리라.
관광 안내 포스터, 열차와 선박을 이용하여 유럽까지 여행하는 일정이다.
정육점
냉동고
McArthur House Peter McArthur라는 작가의 집이다. 그는 Toronto Globe와 Farmer's Advocate에 컬럼을 기고했고 전국적인 독자층을 갖고 있었다. 그는 소설, 시, 에세이, 전기 등을 썼고 특히 전원생활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가로 유명했다. 이 집은 1835년경 Middlesex County에 지은 것을 이 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1914년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 집은 주인의 사회적 지위에 비해 아주 초라한 것이었다. 당시 도시선호사상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시류속에서도 그는 전원생활을 적극 장려하였는데 이러한 소신에 따라 이 집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는 "Back to the Land운동"의 대변인이었다)
(사진을 못 찍어서 웹사이트의 사진으로 대체)
Seibert House 이 집의 소유자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어느 정도 재력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첨단제품으로 볼 수 있는 축음기, 전화기, 아이스박스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실내장식 여기저기에 상당한 돈이 들어간 흔적이 보인다. 피아노처럼 생긴 것은 페달을 이용하여 소리를 내는 악기인데 오르간 뿐 아니라 Key를 선택하여 여러가지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다. 풍금 신시사이저라고나 할까? 당시에도 저런 악기가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할 뿐...... 옛사람이라고 무식한 환경에서 살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3D 투시기, 당시에도 그림이나 사진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빨래판
롤러를 돌리면서 빨래를 통과시키면 물을 짜지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Victor사 제품의 축음기 지금도 소리가 재생이 된다.
언덕위에 서 있는 교회, 저런 사진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오늘의 일정이 끝마무리에 이르렀음이라. 교회 건물이야 예나 지금이나 특별히 다를 것이 없을 터, 종교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여기에 오지 않은 이상 저 건물이 사진속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이것 저것 다 둘러 보고 나갈 때가 되었는데 그냥 나가기 아쉬우니 한방 찍어 준 것이다. 한시간 계획으로 가볍게 들어 왔는데 벌써 세 시간이나 훌쩍 지나갔다. 혼자는 엄두를 못 냈을텐데 다연이가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세 시간 동안 100년전으로의 여행을 마치고...... 출구를 돌아 나오니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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