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국 혼란[한겨레]지정학적으로 본 분쟁 반복 역사
러시아 탄생과 성장의 무대 열강들의 패권전쟁 요충지로 소련 몰락뒤 '판도라 상자' 돼 서방-러 경제이권 깊이 얽혀 전면전 번질 가능성 높지않아 과거 지정학 바탕한 오판땐 재앙 러시아군이 장악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화약고로 떠오른 크림반도의 상황은 수백년 동안 이곳에서 되풀이되던 역사의 반복이다. 이곳은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에 열강이 각축하며 충돌해온 '핫스팟'(열전 지대)이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탄생과 성장의 무대다. 크림반도 남서부 체르소네스 해안의 작은 언덕에는 세인트블라디미르성당이 있다. 블라디미르 대제가 창시한 슬라브 문명은 키예프공국을 거쳐, 러시아로 발전했다. 블라디미르 대제가 988년 기독교 세례를 받고 국교로 받아들인 곳이 이 성당이다.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고향이라 불리는 이유다. 슬라브 문명이 북상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건설된 러시아가 17세기부터 세력을 확장해 흑해 연안으로 다시 진출하자, 서구 열강은 오스만투르크를 부추겨 러시아와 6차례의 전쟁을 벌였다. 그 절정은 19세기 중반 영국과 프랑스가 터키와 연합해 러시아를 상대로 벌인 크림전쟁이다. 크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흑해에서 군함의 항해권을 상실했고, 근대화에 절치부심한다. ■ 열강의 패권 요충지크림전쟁은 해양세력 영국과 대륙세력 러시아가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놓고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격돌한 '그레이트 게임'의 연장선이다. 그레이트 게임은 서쪽으로는 크림전쟁, 동쪽으로는 러일전쟁까지 확산됐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패해 그레이트 게임이 막을 내렸다. 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을 침공한 나치 독일은 모스크바가 아니라 흑해 연안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크림반도를 핵으로 한 흑해 연안을 거쳐 캅카스 지역으로 나아가, 러시아의 곡창·유전 지대를 장악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대패는 나치 독일이 패망하는 원인이 된다. 2차대전 말기 미·영·소 3국 정상은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비밀회의를 열어, 전후 세계를 분할하는 냉전 질서의 틀을 짰다. 이 회의에서 소련은 독일을 분할해 동독과 동유럽 등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내륙 지역을 모두 세력권으로 인정받았다.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에서 소련이 다진 패권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와해됐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간전쟁에서 미국은 이슬람주의 세력을 끌어 모아 소련을 패퇴시켰다. 이는 소련 몰락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흑해 연안부터 중국의 서쪽 국경 지대까지 이어지는 중앙아시아에서 소련의 패권이 무너진 일은 소련 몰락 이후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분쟁의 판도라 상자를 연 셈이었다. ■ 중앙아시아, 패권 지정학의 중심축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 했고, 미국 등 서방은 이 지역의 석유를 비롯한 자원에 대한 전략적 통제권을 확보하려 했다. 그 결과가 러시아나 서방에 기댄 부패한 권위주의 정권의 난립이었고, 이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소요가 이 지역의 분쟁을 더욱 고조시켰다. 근현대 지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학자 핼퍼드 맥킨더의 '중심축 지역' 이론으로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맥킨더는 유라시아 대륙의 인구와 부가 몰려있는 심장부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면 그 출입구가 되는 '중심축 지역'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중심축 지역이 중앙아시아 지역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거대한 체스판>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려면 유라시아 대륙에서 압도적인 패권국가가 등장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흑해에서부터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까지 펼쳐진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는 대륙국가의 등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도한 미국의 아프간전쟁 개입은 이런 철학에 기초했고, 실제로 소련의 패망을 유도했다.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로 시작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군사 점령으로 번진 우크라이나 사태는 소련 몰락 이후 이 지역에서 벌어진 분쟁의 재연이자 종합판이다. 수많은 민족과 세력이 남긴 민족 분쟁을 배경으로 러시아와 서방의 지정학적 대결이 다시 불붙었다. ■ 크림반도 장악은 나치의 주데텐란트 합병?그래서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를 풍미한 전통적 지정학을 중시하는 전략가들은 과거와 같은 대결을 주문한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을 2차대전의 문을 연 나치 독일의 체코 주데텐란트 합병에 견준다. 아돌프 히틀러가 이 지역의 다수 민족인 독일계 민족 보호를 명분으로 이 지역을 합병하는 것을 영국 등이 묵인한 게, 결과적으로 나치가 2차대전으로 나가는 교두보가 된 교훈을 잊지 말라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이가 브레진스키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글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와해를 좌시하면, 인접한 루마니아·폴란드·발트3국의 새로운 자유와 안보가 위협받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서방의 지원은 물론이고 미국 공수부대를 유럽으로 즉각 보내는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경계 태세를 강화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서방의 결의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흘러간 지정학에 휘둘리는 세계? 서방이 나토를 옛 소련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시도, 이에 자극받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군사 점령, 여기에 서방이 군사력 과시를 하라는 주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이제는 유효성을 상실한 과거의 지정학에 바탕을 둔 오판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지금의 세계에서는 초강대국 미국조차도 과거처럼 배타적인 세력권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르게이 유트킨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전략분과장은 "러시아는 여전히 강하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그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면 재앙이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푸틴과 그 동맹자들은 세계화의 수혜를 누리면서도 거칠게 얘기하고 있다. 러시아는 새로운 냉전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고전하고 있던 러시아 경제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와중에 금융시장이 폭락하고 금리까지 치솟는 후폭풍에 휘말렸다. 하지만 서방과 러시아의 경제 이권이 뿌리 깊게 얽혀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워런 버핏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의 행동을 두고 "21세기에 19세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가 19세기적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을 촉발한 것 또한 서방의 19세기적 행보였다. 소련 몰락 이후 배제와 대결에 기초를 둔 옛 지정학을 근거로 벌인 서방과 러시아의 각축이 이번 사태의 근본 배경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확전 여부는 서방과 러시아 등 당사자들이 과거 지정학에 계속 매달릴지, 아니면 연관과 협력의 세계화 시대라는 새 프레임에 따라 행동할지에 달려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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